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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수치(羞恥)적 행위
"문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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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일보 기자 작성일2019-08-2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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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은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수록되어 있는 약초지만, 이것을 담배와 섞어 피우거나 담뱃대에 담아 피우면 마약이 된다. 중국에서 아편이 마약용으로 사용된 것은 17세기 초부터였으나, 영국이 아편을 본격적으로 밀수출한 후부터 중국의 모든 계층에 퍼져 나갔다.

 

이에 따라 약 1천 상자였던 수입량은 1만 상자로 증가했다. 아편을 흡입한 하층민은 잠깐 동안 육체노동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지만, 곧 농촌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 아편은 관료와 병사에게도 흘러들어가 관료 사회를 부패시켰으며, 국가 기강을 흩트리고, 전투 능력을 상실하게 했다.

 

한편 영국으로의 은 유출이 심화되면서 은값이 폭등하자, 백성의 납세가 제대로 이루어지 않아 청나라 정부는 재정 적자에 시달렸다. 아편이 중국 전역, 전 계층에게 확산되면서 청나라는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 적신호가 켜졌다.

영국은 청나라와 무역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중국에 아편을 밀수출하여 빠른 속도로 퍼졌고, 중독자 수가 2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청나라의 사회, 경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임칙서가 아편 몰수와 수입 금지라는 강경책을 쓰자 양국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영국은 자국의 주요 수출품인 아편에 대해 청나라가 부당하게 단속했음을 명분으로 내세워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청나라는 영국의 상대조차 될 수 없었고, 결국 전쟁에 패해 영국과 난징 조약을 맺었다. 아편전쟁을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고 일컫는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유럽의 민족주의는 전 유럽국가의 핵심이 되어 다른 민족국가들을 경쟁자나 적으로 생각했다. 이 때 유럽은 크게 둘로 나뉘어 졌는데 그 두 세력이 서로 충돌하면서 유럽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각 나라들은 자기들의 세력을 넓히려는 욕심이 가득했다.


유럽은 독일과 영국을 주축으로 3국 동맹과 3국 협상을 맺어 자신들의 이익을 꾀하였다.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가 살해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사실은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간의 싸움이었으나 오스트리아가 동맹국인 독일에게 전쟁을 해 달라고 요청하자 독일은 서둘러 전쟁을 부추겼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각국으로 번져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도와 선전포고를 하고 영국은 독일의 벨기에 침입을 구실로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여 유럽 전체가 전쟁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양의 운명은 점차 비극에 빠져들었다. 1914년에 시작하여 1919년 6월 28일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다.   


일본은 1931년 아시아 지역에서 또 하나의 큰 전쟁을 일으켰으나 미국에 의해 히로시마에 신무기인 원자폭탄이 떨어져 1945년에 패배로 끝이 났고, 독일의 히틀러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패했다. 이로써 2차 세계대전도 끝이 났으나 두 번의 세계 전쟁으로 많은 생명이 희생되는 비극을 겪었다. 세계대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느 나라가 그 책임을 져야 할까? 


일제는 무력을 앞세워 1905년 을사늑약(을사조약)을 통해 외교권을 빼앗겼다. 이로써 일제의 침략성과 조약에 조인한 매국 대신들을 통렬히 비판한데 이어 〈제국신문〉·〈대한매일신보〉 등도 조약의 무효와 각 지방의 조약반대운동을 알리는 글들을 싣고 반일여론을 확산시켜나갔다.

 

그리고 유생들과 전직·현직 관료들의 을사5적의 처단과 조약파기를 주청하였으나 일본 헌병들의 강제 해산으로 무산되고, 민영환을 비롯하여 조병세, 홍만식, 이상철, 김봉학, 송병선 등은 자결로써 국권침탈의 울분을 토했다. 서울 시내의 모든 상가는 철시를 단행하여 조약체결에 대한 분노를 표시했으며, 각급 학교의 뜻있는 교사와 학생들도 동맹휴학을 결행하고 조약반대운동에 동참했고, 국권회복을 위한 항일의병항쟁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반면 1910년 일본 육군 대신 데라우치가 3대 통감에 취임하면서 친일파 총리대신 이완용과 사이에 ‘우리나라의 통치권을 일왕에게 넘긴다’는 ‘한일합병‘이란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후 이완용은 백작에 봉해지고 은사금 1천 5백여 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조선총독부정무총감이 의장인 중추원의 부의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의 관료 출신으로는 민영휘와 함께 가장 많은 재산을 모은 자산가로 꼽혔다. 조선은 건국 519년 만에 끝이 나고 이후 35년간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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